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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나우] 미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 통할 수 있을까

역사학자 크리스 밀러의 『칩워』(2022)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반도체 정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베스트셀러이지만 혹평도 쏟아졌다. 반도체 연구가 어떤 경로로 발전해왔고 어느 정도 혁신이 가능한지에 대한 전망이 부족하다는 점과 미국중심적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정책 오류를 정당화할 가능성도 경계 대상이다.   이 책의 핵심은 미국이 반도체 장비나 기술의 일부만으로도 전체 공급망을 제어하고, 이를 통해 타국의 기술발전을 통제하는 게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미국만큼 반도체 공급망에 고통을 줄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미국은 3㎚ 기술이나 최첨단 메모리 제품의 자체 생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산망 교란으로 인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칩워』는 ‘먼저 주먹을 휘두를 의사의 유무’가 주도권을 결정하는 동네 주먹 세계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정당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경쟁 논리에도 위배된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를 자국으로 리쇼어링하는 것도 현재로선 성공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반도체는 장비와 소재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팹을 운영하는 각종 노하우, 수직계열화된 소재·부품·장비 인력과 산업생태계가 같이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구글이나 메타가 상징하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경쟁력을 갖춘 이유는 이 분야에 인재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 같은 제조부문은 부가가치 부족으로 우수한 인재유치가 어려워 해외로 이전됐다. 이제 와서 보조금 정도로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까. 공장 몇 개 짓는다고 반도체 제조업이 부활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규제로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현실이라는 검증을 통과할 수 없다. 최근 중국의 파운드리 산업과 장비산업이 급속한 성장세다.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SMIC는 7㎚급 칩을 만들었고, 팹리스 기업들도 활황세다. EUV 대체기술, 차차세대 소재기술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의 규제는 국산 장비의 중국 수출 감소, 중국 내 메모리공장 운영 제한 등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희생을 강요한다. 합리성과 충돌하는 경제적 봉쇄 정책은 미국이 미·중 경쟁에서 앞서는 데 필요한 탄탄한 동맹네트워크 구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도체기술, 특히 제조 부분의 중심은 아시아로 넘어온 지 오래다. 미국은 흐르는 강물을 되돌리기보다는 미국이 잘하는 부분을 더 잘하는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순리다. 기술의 세계에서 통제로 혁신을 이길 수 없다. 이병훈 /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마켓 나우 미국 반도체 반도체 제조업 반도체 기술 반도체 장비

2023-11-29

[프리즘] 반도체 제조업의 권력 교체

반도체칩·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지난해 7월 27일 상원을 통과해 8월 9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법은 28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을 다시 반도체 제조업 중심국가로 만들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는 것이 목표라는 정도로 알려졌다.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등 외국 기업과 인텔 등 자국 기업이 보조금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넘은 지난달 28일께 보조금에 붙은 단서가 알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보조금을 받는 조건에 기업의 경영상태 제출, 연방정부에 시설 접근권 제공, 초과 이익 발생 시 지원금의 최대 75% 환수, 우려 대상국(사실상 중국)에서 10년간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 금지 등이 들어있었다. 결국 중국 배제를 넘어 우방국의 경쟁력 약화 유발도 포함된다.   반도체를 향한 굳은 의지는 지난해 8월 백악관이 법안 서명과 함께 발표한 온라인 보도자료에 잘 나온다. 백악관은 법안의 취지로 비용 감소와 공급망 강화, 중국 견제를 들었다. 이 세 가지는 코로나19로 초미의 현안이 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붕괴, 중국의 제조업 능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고민에 대한 해법이다.   백악관은 반도체 중심국가 정책을 우주개발 경쟁과 비교했다. “이 법은 과학기술의 우위를 확고하게 유지할 것이다. 달 착륙 경쟁이 절정이던 1960년대 중반, 연방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2%를 연구개발에 투자했으나 2020년에 이르러 이는 1% 미만으로 줄었다.” 냉전 시대 옛 소련과 벌인 체계 경쟁 수준이다.     법안을 상정한 연방 상원 통상과학교통위원회 마리아 칸웰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세부사항을 알리며 “반도체 제조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 지위 회복 경쟁에 신호탄이 울렸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로 미국은 자국 내 제조업 시설 부족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특히 반도체 생산시설 부족을 미래 산업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국가안보로 보고 우방국의 경쟁력까지 끌어오기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조업 시설을 해외로 보내 생산가를 낮추던 오프쇼어링(offshoring)에서 제조업을 다시 끌어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거쳐 우방국의 제조업까지 끌어오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우방국의 제조업은 불가피하게 타격을 입는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일본의 반도체 몰락을 떠올린다.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은 한때 전 세계 반도체 매출 톱 10 기업 중 7개를 차지했다. 일본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80%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미국이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와 마르크화의 환율을 낮추고 1986년 정부 간 협정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의 생산 원가 공개와 미국 반도체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 20%를 못 박았다. 미국은 또 1987년 일본의 협정 위반을 이유로 수퍼301조를 앞세워 무역보복에 나섰다. 결국 반도체 제조업 권력은 한국과 대만으로 이동하고 2020년 반도체 매출 톱 10 기업에 일본은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시기상 반도체 기업의 퇴조와 함께했다.   미국은 한 번도 반도체 강국이 아닌 적이 없다. 설계와 시스템반도체는 압도적인 1위다. 다만 위탁생산(파운드리)과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과 한국에 밀리며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이 1990년 37%에서 현재 12%로 줄었을 뿐이다. 이 부분마저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법에 서명했고 기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 벌써 효과도 있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량은 올해 1, 2월에만 25%가 급감했다. 반도체 제조업의 2차 권력 교체는 시작됐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반도체 제조업 반도체 제조업 반도체 생산능력 반도체 중심국가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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